노동영 박사님의 컬럼입니다.
박사님의 해박한 지식과 경험으로 여러분들의 고민과 걱정을 조금이나마 덜어드리고자 합니다.
촉감
작성자 : 관리자 Date : 2014-05-27Hits : 1328

촉감

                                       서울대학교암병원장 노 동 영

 촉감은 외부의 자극이 피부 감각을 통하여 전해지는 느낌으로, 자극의 성상에 따라 단순히 부드럽고 딱딱한 정도는 물론 성질과 모양새까지 맞출 수 있는 매우 예민한 감각이다. 또 촉감은 단순히 사물을 판단하는 것을 넘어 사랑의 느낌·성적인 자극·시적인 환상 등을 느낄 수 있는 인간의 오감 중 가장 중요하고 오묘한 감각의 하나이다. 

 의사의 촉감은 환자의 병력, 증상 등을 물어보고 눈으로 환자와 환부를 관찰하는 문진과 시진 후 마지막 단계에서 손으로 환자를 촉진함으로써 그 병을 알아내는 역할을 하는 데 주로 사용된다. 즉, 진찰을 하는 것이다. 의사들은 학생 때부터 손의 감각을 높이기 위해 팬텀(인체 모형)을 이용해 다양한 촉감의 물건들을 인형의 몸 안에 넣어, 알아맞히며 촉지하는 연습을 하기도 한다. 

 일반 여성들에게도 유방암의 조기진단을 위하여 매달 자가검진을 하라고 권하고 있다. 생리가 끝나고 1주일 전후로 자신의 가슴을 지그시 누르며 구석구석 촉지해 보라 한다. 그러면 모두들 도대체 무엇이 이상인지 모르겠다고 이야기한다. 어떤 이들은 정상 유선을 움켜잡고 멍울이 만져진다며 달려오기도 한다. 자가검진을 통해 일반 여성들이 병을 진단하기를 바라며 권하는 것은 아니다. 지난달과 비교하여 눈으로 봤을 때 혹은 촉지 시 변화가 있는지를 찾아보라는 뜻이다. 병을 진단하는 데 있어 결코 의사의 손과 일반 사람의 손이 같을 수는 없다. 같은 건반을 두드리더라도 피아니스트의 손이 우리의 손과 다를 수밖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본인은 가슴이라는 여성의 신체 부위를 가장 많이 촉진하는 사람 중 하나일 것이다. 30년 가까이 유방암 진료를 해 오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일반 사람들은 가슴을 단순히 신체의 일부라고만 생각하지 않는다. 아무 느낌이 없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다. 이는 해당 신체 부위를 진찰의 대상이 아닌 다른 맥락에서 보기 때문일 것이다.

 의사와 환자가 신체 부위를 드러내고 촉진을 할 때에는 그런 느낌을 가질 수 없다. 진료 시 의사는 환부의 이상 여부를 찾아내는 데 온 신경을 집중하며, 혹시라도 환자가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간호사가 배석한다. 또한 환부의 노출을 최소화한 상태에서 세 손가락 끝만을 사용하여 유두 부위를 피해 촉진한다. 일반인들이 상상하는 그런 느낌은 들 수가 없다. 이와 같이 사람의 촉감이란 상황에 따라 받아들이는 내용이 달라지는 것이다. 

 사실 뛰어난 의사들은 환자가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설 때부터 감이 잡힌다. 진단기기가 아무리 발달해도 피부의 변화, 피하 유선의 느낌까지 촬영할 수는 없다. 또한 통증, 열감, 부드러움과 단단함 등의 감각 역시 찍을 수 없다. 물론 과학의 발달로 의료에서도 로봇이 등장하여 수술 시 로봇팔이 미세한 감각에 따라 움직이고, IT 분야의 화두인 사물 인터넷(IoT)의 경우 한층 발전된 센싱 기술을 통해 감각을 객관화하려는 시도가 지속되고 있다. 의사가 하는 진찰의 많은 부분을 기계가 대신할 시대가 올 것은 틀림이 없다. 

 하지만 환자들이 나에게 가장 바라는 것은 사람에게서 느낄 수 있는 따뜻함이다. 수술 전 “선생님, 제 손을 좀 잡아 주세요.”라며 손을 내밀고 마취가 되어 의식이 없어질 때까지 내 손을 꽉 잡는다. 벼랑 끝에서 내 손에 의지해 떨어지지 않으려 애를 쓰는 것이다. 그런 절실함이 담긴 상황에서 느껴지는 촉감은 촉감 이상의 것이다. 수술실에서 떨고 있는 환자의 손을 잡아 줄 때 내 자신이 가장 의사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가급적 내가 수술방에 들어가기 전에는 마취를 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한다. 환자들 곁에 내가 있다는 위안, 내가 잡은 손이 그들을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을 주기 위해서 말이다. 지금도 유방암 환우 모임인 비너스회의 수련회에서 누군가 내 손을 잡으면 다른 이들도 모두 자신의 손을 잡아 달라며 아우성이다. 벼랑 끝에 선 순간, 손을 통해 전해졌던 따뜻함과 촉감이 마음에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얼마전 ‘섬진강 시인’으로 알려진 김용택 시인이 시집을 한 권 보내주었다. 에필로그에 실린 ‘삶’이라는 시의 한 구절을 소개하며 글을 마친다. 

내 곁에 앉은
주름진 네 손을 잡고
한 세월 눈감았으면 하는 생각
너 아니면 내 삶이 무엇으로 괴롭고
또 무슨 낙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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