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랑, 빨강 단풍이 잠시 자태를 뽐내다 낙엽으로 바닥에 뒹근다.
낙엽을 밟으면 칙칙한 냄새와 함께 옛 일들이 하나 하나 밟히며 묻히는 느낌이다.
우리 센터는 안에서 바깥을 보면 대학로와, 의과 대학의 노란 단풍이 특히나 아름답게 쏟아져 보이는 곳이다.
이 아름다운 계절에는 누구나 철학자가 된다.
문득, 비너스 산악회와 10월 들어 같이 오른 대청봉 산행이 생각난다.
오색에서 한 시간 이상 늦게 출발한 우리 남자 세 명은 비너스를 따라 잡기 위해 달려 올라 가야 했고,
한시간만에 뒤꽁무니와 합류하였다.
그 때의 감격, 어둑어둑, 힘들게 삼삼오오 대청봉을 밟으며, 설악산의 정상에 섰다는, 드디어 해 내었다는 흥분에, 소리를 지르던 그 순간, 산장에서 한 시간여나 늦게 도착한 후미의 비너스를 걱정하며, 발을 동동 구르던 일들, 각자 정성스레 싸온 밑반찬에 햇반을 데워, 도란 도란 식사를 하던 일, 모두 산장에서 이른 잠에 잠이 안와 뒤척이며, 얘기하다가 다른 사람에게 핀잔 듣던 일, 우리는 모두 하나가 되었다.
다음날 아름다운 설악의 이른 단풍을 보며, 가슴 깊이 치미는 심정, 우리는 같이 가고 있구나, 이렇게 가슴 벅차게 아름다운 풍경을 다른 사람과 함께 느낄 수가 있었으면, 우리 모두 아픔은 잊어버리고, 오로지 맑은 공기와 함께 희망이라는 명약을 다 같이 복용하고 갈 수 있었으면...한 해가 또 마무리되고 있다.
다사다난 하였고, 특히나 금년에는 Global Breast Cancer Conference를 전 세계 환우들과 같이 학술대회에 연계하였다. 의학자들이 추구하는 학문이 결코, 책장에서 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환자들의 치료와 권익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점을 온 세상에 알린 소중한 학술 대회였다.
전 세계에서 1004 명이 등록하였고, 그 중에서도 환우들이 200 여명 등록하여 명실상부한 다학적(multidisciplinary) 학회로 모두가 서로를 이해하며 연구할 수 있는 좋은 자리였다.
특히 미국 수잔 코멘 재단의 점심 강연에서는 환자의 권익을 위해 얼마나 많은 일을 해야 하는지 잘 소개해 주었고, 또한 환자 자신들도 숨어 있을 것만 아니라 스스로 사회를 향하여 당당히 나서야 함을 가르쳐 주었다. 이번에 일본, 중국 , 대만 , 홍콩 등 아시아 국가에서는 한국인들의 저력을 다시 한번 느끼며, 우리 한국이 이러한 방향을 잡고 주도해 나갈 수 있음을 통감하고, 또 인정할 수가 있는 자리가 되었다.
앞으로 2 년 후인 2009년에는 더욱 좋은 주제와 방향성을 가진 학회로 깊이 있는 의견의 교류를 꾀하고자 한
다. 우리 비너스들도 아시아 국가들의 환우들과 적극적인 교류를 통해 서로의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하는데
국경이 없음을 인식하고 공동 노력을 통해 보다 더 좋은 권익 신장과 아울러 봉사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았으면 하는 소망이다.
외국도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신약을 씀에 있어 많은 제약을 받는 것이 사실이다. 또한 장애, 재건 문제 등, 국가 비용이 많이 드는 부분들을 어떻게 슬기롭게 해결해야 하는가들도 같이 궁리해 보아야 할 것이다.
최근에는 환자들의 삶의 질에 관한 부분이 제일 중요한 관심사의 하나이다. 즉 이전에는 환자의 생명만 구하는 것이 의술이 가지는 최대의 목표이었다면 이제는 환자가 치료 후에 얼마나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하느냐가 더 중요한 부분으로 차지하게 된 것이다.
그만큼 환자의 치료 성적이 아주 좋아졌다는 의미가 되겠으나, 누구나 예외 없이 암 진단을 받으면 정신적으로 황폐화가 되고, 벼랑 끝에 서게 됨은 어쩔 수가 없을 것이다. 누구의 탓도 아닌데, 자신과 주위를 원망하고, 부정하고, 앞이 캄캄해질 것이다.
이런 때 신뢰와 함께 자신감을 불어 넣어줄 의료진, 든든한 가족, 친구들의 역할이 아주 중요할 것이다.
이제 의료진도 어느 특정 의사가 고친다고 하기보다는 각 분야의 모든 의사, 간호사, 의료 전문가들이 받들어 지켜보고 지지해 주고자 한다. 절대로 환자가 외롭게 되어서는 안 된다, 가족은 물론이고 의료진도 그와 같이 가고 있음을 보여 주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부분들이 학문적으로 정리되고, 다루어져 더 좋은 의료 서비스가 베풀어 지게끔 다 같이 노력해야 할 것이다. 특히나 이곳 새내기 환자들은 우리 비너스환우들이 근처에서 지지해 주고 있는 것이다. 비너스들이 그 어려움을 극복하고 다시금 더 건강하고 자신 있게 환생하는 것을 보면 대견스럽기도 하고, 우리가 다 같이 방향을 잘 잡아가고 있구나 하는 긍지를 가지게 된다. 때로는 회장님을 비롯한 집행부의 임원, 지역회원들이 이마에 땀을 송송 맺으며 봉사하는 것을 보면 안쓰럽기도 하나, 아 저런 식으로 승화할 수가 있구나하며 감격과 찬사를 보내게 되는 것이다. 얼마나 순수한 봉사인가? 바로 이러한 것들이 우리가 길게 혹은 짧게 살면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을 얻은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쪼록 우리 비너스들도 이번 학회를 통해 비너스가 하고 있는 일들을 학문적으로 잘 정리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이미 상담 창은 국내 뿐 만 아니라 국외에서도 환자들의 요구분석에 귀한 자료로서 연구가 되고 정리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등산, 노래, 요가 등의 비너스 활동이 얼마나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또 어떠한 활동들을 개발함으로써 삶의 질을 더 개선할 수 있을지, 또 배우자는 어떠한 행동 방식으로 변해야 하는지 등을 우리 연구 간호사들과 전문 의료인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한번 연구해 보면 어떨까하는 욕심이다. 비너스가 나서면 언제든 무엇이든 도와주는 사람들이 줄을 선다. 그만큼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또 좋은 사회공헌을 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더욱 스스로와 남을 돌보며 행복하고도 긍정적인 삶과 그 내용을 개발하는데에도 노력해야 하겠지만, 더불어 연구하는 여유를 가졌으면 하는 바램이다. 사랑하는 비너스의 무궁한 영화와 발전을 기원합니다. 서울대학교병원 유방센터 노 동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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